분실

내가 좋아하던! 2006. 8. 19. 23:48


어릴 적 내 외갓집 뒷마당엔
감나무 세그루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방 앞마루에 누워 끼룩대며 날아가는 ㅅ 자무리의 철새들을 보면서 집거위를 타고 여행하던 닐스를  생각하다가,
살얼음 얼은 논를 가만가만 조심스레 걸어보다가,
혹은 아무도 쓰지 않는 골방을 뒤져서
외삼촌들이 남겨둔 아주 오래된 주간지의 심각한 연애소설을 읽다가 누런 황토바닥의 부엌을 거쳐  외갓집 뒷마당으로 나가면,

크고작은 장독들이 줄지어서 서있던 얕으막한 장독대 뒷편으로  감나무 세그루가  있었다.

감나무곁에 서서 낮은 담에 매달려
한겨울 인적없고 쓸쓸한 논밭지나 저멀리 보이던
지평선은 아무런 이유없이 뭉클하게 슬퍼왔다.

허물어진 외갓집.
베여져버린  감나무 세그루.

그리고
송두리채 분실된 내 어린 시절의 추억.


Posted by gra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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