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십여년넘게 다니던 정독도서관은 세월이 정체된곳.
수년에 걸친 수험생활로 찌든 고시생들이 컵라면을 먹으며 남루한 현실을 이겨내던 곳. 교복입은 발랄한 여학생들이 종종걸음으로 오가며 까르르 웃던 싱그러운곳. 한구석벤치에 정담을 나누던 수험생커플이 밉지 않던 곳. 어떤 책을 빌릴까 고여있는 오래된 책냄새가 기대되던 곳. 오래되고 낙후되었다하지만 내겐 더도덜도말고 그대로이면 좋겠는, 잠시의 수고로움이 더 소중한 그곳.


  돌려다오..
 나의 정독도서관!

 
 고개길을 쌕쌕대며 올라가 탁 트인 평지에서 숨을 들이킬때 내게 몰려오던 희미한 풀냄새 나무냄새 흙냄새.여름이면 꽃향기 늦가을이면 말라가던 낙엽의 냄새. 어디로 간거니?

 삼청동열풍에 휩싸여 조용했던 골목길 이귀퉁이 저귀퉁이에서 터져나오는 플래쉬불빛이랑 무기같은디에스랄 카메라들쳐맨 레깅스입은 여자들과 비니 둘러쓴 남자들은 참아줄께.
내 정독도서관 첫인상을, 아니 첫후각을 돌려줘.

왜 내가 콩볶다 태우는 냄새를 맡아야 하니? 길건너 연두인지 골목길 커피팩토리인지 (느낌상 여기다) 재래종 청국장끓이는 냄새, 밥태우는 일상의 냄새도 아니고 내가 왜 외래종 커피콩 볶는 냄새를 도서관어귀에서 맡아야하니?
얘, 너는 어디서 왔니? 콰테말라산이니? 수마트라야? 어디든 상관없이, 얘들아,  나에게 그냥 고즈넉히 그자리를 지켜온 정독도서관의 냄새를 돌려줘! 


  아, 삼청동에 줄긋고 싶다. 가드라인을 치던지.
Posted by grac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