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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 피부를 가진 깊은 눈매의 소녀가 되어서
자전거를 타고 저녁 석양이 질 무렵 목장길따라 쭈욱 가다가
울타리에 잠시 기대어 책을 읽다가
짙은 다크초콜렛을 먹어본다.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 감미로우니...


어린 시절 채시라가 나오던 롯데가나초콜렛선전은
지금 생각해도 목가적인 낭만파 씨엡의 최고봉이다.


덧붙여
사진컷만으로 이루어지던 허쉬초콜렛선전도
라이벌개념에서는 뛰어난 작품이었는데
시카고노래 하투세이아임쏘리(영어치기 힘들다)에 맞추어
말이 끄는 마차 뒤에서 웃으며 앉아가는 목가적인 남녀커플들의 모습이 좋았지만
채시라의 가나나 김혜수의 허쉬나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우리가 스테파네트 아가씨도 아니고.여기가 스위스도 아니고.
게다가 20세기후반에?


그때는 이거말고도 낭만풍 과자선전이 많았는데
미국혼혈아 쏘냐가 배낭메고 나와서 기차에 매달리던 후속 허쉬초콜렛선전이나
여러명이 우르르 나와서 산과들 강에서 놀던 롯데껌선전
별밤 중간 광고에서 시를 낭독해주다가 급기야는 껌포장지에 시를 인쇄해서
대박치던 에뜨랑제의 광고--채시라가 하이디풍 원피스입고 밀집모자쓰고 들을 거닐었지.
소매물도 등대지기에게 뜬끔없이 "쿠크"를 외치던 쿠크다스 광고.
등등등..


그중 가장 따라해고팠던 모습이 요 가나소녀모습이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소녀의 모습이 이뻐뵈었기때문이었고
'감히" 남자와 같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수없었던
무채색의 밋밋하고 건조한 소녀시절이었기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살던 곳이나 다니던 학교 모두 근방엔 산책을 즐길만한 "길"이 전혀 없었으며
빨간머리 앤풍의 그린게이블즈나 호숫가나 과수원길이나 목장길은
도저히 존재할래야 존재할수 없는 곳이었다.


비오는날 수채화의 얼토당토않던 내용의 영화에 매료되었던 것도
내내 이루지 못한 "목가적인 전원에서의 낭만적인 우아한 삶"을 꿈꾸게하던
배경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에서야 짐작해본다.

옥소리는 이쁜 앞치마원피스 입고 모자쓰고 이젤펴고 그림그리다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리면
목장길 따라 집에 오고 이쁘고 정갈하게 지어진 창고에 낙서도 하고
오빠 찾으러 언덕을 넘는다.
(우리나라에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 도대체 어디란 말이냐.
대관령목장이니 보성차밭은 이 개념이 아니다)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중학생소녀는
열심히 목장소녀 가나초콜렛에게 여러가지 덧칠을 하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저 꿈많은 어여쁜 소녀는 대목장주의 이쁜 딸내미로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만을 듬뿍 받으며 예의바르고 고운 마음씨로 시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주변환경에서 티없이 자라나고
그 소녀의 주변엔 당연히 그녀를 흠모하는 청년들이 두셋 있는 법인데
대도시에서 훌륭한 엘리트코스를 받고 있는 따사로운 마음씨의
서글서글한 교회에서 인기많은 반듯하고 성실한 동네오빠(!)와
거칠고 시니컬한 미소를 가지고 있지만 목장소재지 주변에서는
제일 가는 미모와 훤칠한 체격의 반항아인 목장 인부
(그러나 누구보다 똑똑하며 잠재력이 있으며 소녀를 말없이 지켜보며
묵묵한 사랑을 감추고 있다)
이 둘중에서 누구를 택하여서 드라마틱한 연애를 할것인지 말것인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곤 했다.


연습장 앞표지와 팬시문구점 엽서의 스틸컷으로 나와서
사람마음 휘돌리던 로맨틱한 소녀풍의 생활모습은
(그 소녀의 방엔 자잘한 꽃무늬 벽지가 있으며
잘말린 모슬린으로 된 침구세트와 곱게물든 석양을 바라볼수있는
이쁜 창문과 기울어진 집 지붕이 천장이다!)
시야를 넓혀서 세계사에 과연 실제로 존재했을까,
늘 시끌벅쩍한 세계사 어느시절쯤에 존재했을까
의심스러운 이 낭만적인 목장문학소녀의 삶을 왜 나는 아직도 꿈꾸는것일까?

Posted by gra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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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내가 좋아하던! 2006. 8. 1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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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작가가 쓰던 무렵의 전원일기는 억지로 쥐여짜지 않은 명작들이 많다.
사람사는 마을에 슬그머니 나타날 것같은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하면서도 맘에린 사건들이 요란하지 않게 상식선에서 표현되어지곤했다.그리고 마음 한귀퉁이에 삶의 고비를 지혜롭게 넘길수있는 여운까지 곁들여주면서.
(전원일기와는 반대로 억지로 쥐어짜는 문장들이다)


학교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공장에 가야했던 일용처는 우연히 영남이담임선생님을 보게 되고 그 선생님에게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고 만다. 남에게 뭐라 말도 못하고 몸까지 아프고 말고 그 속내 믿음직한 동네형님 영남엄마에게 털어놓고, 수다스런 시어머니 일용네도 우연히 엿듣고 만다. 정많은 일용네 쓰린 속내 감추면서 엿가락 꺽어 병간호중인 영남엄마에게 전해주며 말해준다.젊은 날 일용이 데리고 홀로 고생할때 동네 떠돌아다니는 소금장수가 자신은 그렇게 좋았다고.이제 생각해보니 소금장수가 좋았던게 아니라 그 소금이, 돈으로 환산되는 소금이 좋았던거라고.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뜨며 어쩔줄 몰라하는 영남엄마에게 우리만 알자는 뜻으로 눈을 꿈벅거리며.일용이부인은 신음소리내며 방에서 앓고있고.영남엄마는 며느리의 상사병에 씁쓸하면서도 그 아픔을 이해하는 일용네를 이해하고..


그렇다. 일용부인은 영남이담임을 사모하여 병이 난게 아니라.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이 아파서 앓아누웠던 것이리라.
악착같이 재산을 일구려 열심히 살아가다가 잠시 백묵으로 판서하는 선생님을 보며
별헤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아팠던 것이리라.
아니 실제로 깔끔한 그 선생님을 좋아했어도 또 뭐가 문제랴.


날맑은 가을 날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이 어찌 알수있겠으며 그 바람 잠시 쐬며 옛생각에 잠기든
시름에 잠겨 울든 서로 같이 살 부대끼며 사는 세상에서
서로간에 이해하며 보듬어주며 넘어가주면 그뿐일것을.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시어머니 누구의 누구를 떠나서
세상을 살아내는 이 세여인의 굳은 연대감 또한 얼마나 멋진가.
고작 마음 달래주는 바람 한조각으로 동네 시끄러울일 없으며
야단칠 일 아니고 놀림감 될 일 아니며 그 마음 감싸며 달래며 이해하는
멋진 우리의 세언니들.


숨가쁜 감정의 대립만을 보여주는 드라마보다
요렇게 잔잔하게 극한까지 가지 않아도
삶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무리하지 않는 극본이 요샌 너무 귀하다.


Posted by gra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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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잘 해보자.
Posted by gra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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