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내가 좋아하던! 2006. 8. 19. 23:33
수정 | 삭제
김정수작가가 쓰던 무렵의 전원일기는 억지로 쥐여짜지 않은 명작들이 많다.
사람사는 마을에 슬그머니 나타날 것같은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하면서도 맘에린 사건들이 요란하지 않게 상식선에서 표현되어지곤했다.그리고 마음 한귀퉁이에 삶의 고비를 지혜롭게 넘길수있는 여운까지 곁들여주면서.
(전원일기와는 반대로 억지로 쥐어짜는 문장들이다)


학교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공장에 가야했던 일용처는 우연히 영남이담임선생님을 보게 되고 그 선생님에게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고 만다. 남에게 뭐라 말도 못하고 몸까지 아프고 말고 그 속내 믿음직한 동네형님 영남엄마에게 털어놓고, 수다스런 시어머니 일용네도 우연히 엿듣고 만다. 정많은 일용네 쓰린 속내 감추면서 엿가락 꺽어 병간호중인 영남엄마에게 전해주며 말해준다.젊은 날 일용이 데리고 홀로 고생할때 동네 떠돌아다니는 소금장수가 자신은 그렇게 좋았다고.이제 생각해보니 소금장수가 좋았던게 아니라 그 소금이, 돈으로 환산되는 소금이 좋았던거라고.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뜨며 어쩔줄 몰라하는 영남엄마에게 우리만 알자는 뜻으로 눈을 꿈벅거리며.일용이부인은 신음소리내며 방에서 앓고있고.영남엄마는 며느리의 상사병에 씁쓸하면서도 그 아픔을 이해하는 일용네를 이해하고..


그렇다. 일용부인은 영남이담임을 사모하여 병이 난게 아니라.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이 아파서 앓아누웠던 것이리라.
악착같이 재산을 일구려 열심히 살아가다가 잠시 백묵으로 판서하는 선생님을 보며
별헤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아팠던 것이리라.
아니 실제로 깔끔한 그 선생님을 좋아했어도 또 뭐가 문제랴.


날맑은 가을 날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이 어찌 알수있겠으며 그 바람 잠시 쐬며 옛생각에 잠기든
시름에 잠겨 울든 서로 같이 살 부대끼며 사는 세상에서
서로간에 이해하며 보듬어주며 넘어가주면 그뿐일것을.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시어머니 누구의 누구를 떠나서
세상을 살아내는 이 세여인의 굳은 연대감 또한 얼마나 멋진가.
고작 마음 달래주는 바람 한조각으로 동네 시끄러울일 없으며
야단칠 일 아니고 놀림감 될 일 아니며 그 마음 감싸며 달래며 이해하는
멋진 우리의 세언니들.


숨가쁜 감정의 대립만을 보여주는 드라마보다
요렇게 잔잔하게 극한까지 가지 않아도
삶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무리하지 않는 극본이 요샌 너무 귀하다.


Posted by gracin
,